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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
고아에 포수 출신이었던 장군은 당시 보기 드문 190cm 장신으로 기골이 장대했다. 바늘귀도 맞춘다는 명사수였고, 그 실력은 부대 후미에 홀로 남아 추격하는 일본군 수십명을 사살해 추격을 단념시킬 정도였다.
1920년
청산리 대첩 (1920. 10)
삼둔자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군은 홍범도 장군을 추격
봉오동 전투에서도 패배한 일본군은 2개 사단을 투입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연합군 조직
청산리의 10여차례 전투에서 독립군이 승리, 청산리 대첩
간도 참변 (1920. 11~1921. 4)
청산리에서 대패한 일본은 패배 원인을 분석한다
일본은 독립군 근거지 말살을 위해 간도 민간인 수만을 학살
독립군 이동
일본에게 학살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해 독립군은 간도를 떠남
모든 것을 바친 홍범도 장군
봉오동 전투 당시 홍범도 장군의 나이 53세
스탈린에 의한 한인 강제 이주시 나이 70세
광복 2년을 앞두고 1943년 10월 서거
독립운동 중 아내와 두 아들, 온 가족을 일본에 의해 잃었다
아내는 일본군의 고문으로 사망
큰아들은 독립군 활동 중 피격되어 전사
작은아들은 독립군 활동 중 결핵으로 사망
홍범도를 회유하라는 일본군의 협박에 대해 아내 이씨 부인은 이렇게 답했다.
“계집이나 사나이나, 영웅호걸이라도 실 끝 같은 목숨이 없어지면 그뿐이다. 내가 설혹 글을 쓰더라도 영웅호걸인 그는 듣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나더러 시킬 것이 아니라 너희 맘대로 해라. 나는 아니 쓴다.”
이씨 부인은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혀를 끊으며 저항하다 30대 후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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